1960년대의 미국 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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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티시 인베이전 이전 | 브리티시 인베이전 | 브리티시 인베이전 이후 |
이 시대의 주요 장르[]
포크 락[]
1950년대부터 시작된 포크 리바이벌 혹은
- Animals(House of the Rising Sun)
밥 딜런의 영향을 받아
포크에 락을 결합한 흐름이
- (The Byrds의 Mr. Tambourine Man 등등)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시작되어
- The Mamas & the Papas
- Crosby, Stills and Nash
미국 동부(뉴욕) 지방으로도 영향력을 뻗쳤다
- The Lovin' Spoonful
- Simon and Garfunkel 등
개러지 락[]
브리티시 인베이전 이전부터 텍사스나 미국 중서부 지방을 중심으로 정착했다가
브리티시 인베이전 이후부터 포텐 터졌던 장르
싸이키델릭 락[]
원래 뉴욕에서 시작되긴 했지만
나중에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융성하게 되었음
- 해당 문서 참조
락 페스티벌의 만개[]
1967년 Fantasy Fair and Magic Mountain Music Festival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락 페스티벌 개념이 만개하기 시작했으며
69년 말 알타몬트 이전까지는
히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음악 페스티벌의 열기가 아주 뜨거웠다
- 대표적으로 우드스톡 페스티벌 등이 있으며
- 지금도 이 페스티벌이
- 당시 락 페스티벌의 초절정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드스톡 페스티벌[]
1969년 8월 Max Yasgur라는 농부가
2차대전 전후 히피 세대와의 세대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뉴욕 주의 '베델'이란 마을에 위치한 자기의 목장에서
개최에 동의해서 개최된 페스티벌
- 당시에 쟁쟁했던 포크 락, 히피나 싸이키델릭 락 계열,
- 인도 출신 등의 뮤지션이나 사상가들이 참여하여
- 히피로 대변되는 반문화 운동 및 정신의 진수를 보여줬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 지미 헨드릭스 역시 이 페스티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뮤지션으로 참가했다
- 자세한 내용은 영문위키의 관점 참조
하지만 이렇게 끝을 모르게 뜨겁던 히피와 락 페스티벌의 열기는 몰락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히피 문화의 몰락[]
69년 닉슨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히피 문화는 더 과격해졌고
각종 사건사고와 시련을 겪으며 몰락해갔음(찰스 맨슨 등)
- 물론 우드스톡 같은 페스티벌이 엄청난 파급력을 가져오긴 했지만
- 이런 집단적 문화운동이나 히피들의 페스티벌 문화마저
- 폭력집단(폭주족 등)의 개입(알타몬트의 비극 등) 등으로 얼룩지는 등의 변질을 겪고 몰락해 가면서
- 70년대로 갈수록 60년대의 반문화 운동을 지지하던 엘리트도
- 등을 돌릴 정도로 냉랭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주요 60년대 아티스트들의 죽음이나
밴드(비틀즈 등)의 해산도
이런 현상에 휘발유를 끼얹은 셈
- 이런 식으로 히피 문화가 몰락하게 되었고
- 그 이후로는 문화사적으로 현자타임을 맞게 되었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