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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문서: 힙합

초창기의 시대적 배경 편집

우리는 미8군 시절부터 미국 음악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긴 했음

그런 이유로 랩의 요소 자체야 홍서범 등이 일찍이 차용하긴 했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문화 대통령'이라는 서태지가

처음 진지하게 '힙합'으로써의 형태를 국내의 메이저 씬에 도입했고

그 이후로도 미국물 먹고 부유한 교포, 유학생 출신 등의 사람들이

좀 더 본격적으로 음반 등의 문물을 들여오고

국내 메이저 씬에서 활동하기도 했음

  • (듀스, 업타운 등등...)

초창기의 한계 편집

아직 도입기에는 막 대중화되던 시점이라

당시 국내에서 유행하던 전형적인 댄스 뮤직에 랩을 얹은 경향이 컸고,

특히 제대로 된 언더씬도 기대하기 힘들었던 터라

이런 게 절대적이다시피 한 대세였다

이런 상황이라 힙합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에는 한계도 있었고

결국 많이 검열당해 대중적이고 순한 맛밖에 보여줄 수 밖에 없게 된 경향이 있었다

  • (굳이 외국식으로 표현하자면 'hip house'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초기 성장기(1990년대 후반~) 편집

하지만 90년대 중후반에 가서는

PC통신 등을 통한 자생적 동호회도 생기고,

이런 기반이 쌓이면서 본격적으로 좀 더 진지하게,

아직 마이너 음악이라는 리스크, 검열삭제도 무릅써가면서

'힙합'으로써 온전히 표현된 음반과

(언더 씬 등지에서의) 컴필레이션 앨범, 초보적 평론 등이 시작되기도 했다

2000년대 정착기 편집

계속 차세대 힙합 아티스트와 레이블,

동호회(2000년대부터는 PC통신이 아닌 인터넷 기반) 등이 지속적으로 출현하고

몸집도 본격적으로 거대한 수준으로 불려가며 정착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서구의 인디 락 씬이 메이저를 왔다갔다하고 주류화했듯이

한국의 언더힙합씬-(인터넷)동호회, 메이저 힙합 모두 철저한 '주류로써' 정착되어

상호 연계, 소통하며 공존하기 시작했다

  • 당연히 인터넷뿐만 아니라
  • 예능을 포함한 매스미디어의 권력이
  • 국내 힙합의 위상에 관여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대중음악 문서도 참조 바람

2010년대 편집

기술 발전과 트렌드 변화로 인해 미디어 및 관련 기술이 변화하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생겨난 각종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소셜(1인) 미디어, DAW 발전 등에 의해

힙합 창작과 향유의 접근성이 좀 더 낮아지게 되어

좀 더 어린 연령대로 장르의 외연을 더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 실제로 부산의 라이브하우스에서도
  • 과거에는 락을 주로 취급했지만
  • 늦어도 2010년대 중반 이후로는
  • 어린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 이런 라이브하우스를 대관하여
  • 힙합을 표현하는 모습을
  • 잊을만하면 볼 수 있게 되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대중음악 문서도 참조 바람

같이 보기 편집

https://namu.wiki/w/힙합

https://m.bugs.co.kr/special/1/XC6JS92H9AAAPBFZ17DZ?_redir=n

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B%AF%BC%EA%B5%AD%EC%9D%98_%ED%9E%99%ED%95%A9#%EB%8C%80%ED%95%9C%EB%AF%BC%EA%B5%AD%EC%9D%98_%ED%81%AC%EB%A3%A8%EC%99%80_%EB%A0%88%EC%9D%B4%EB%B8%94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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